Page 245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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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과 퇴옹(退翁)의 심성론·수행론 비교  • 245




               성이 불교 측에 그런 무의식을 종용하고 있었다는 혐의를 딱히 부정하

               기도 어렵다. 다만 세속에 ‘엄격주의, 엄숙주의, 경건주의, 은둔주의’로
               비칠 수 있는 퇴옹의 불교 수행상은 오히려 ‘불교의 불교다움’ ‘수행자의

               수행자다움’에서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넷째, 양명과 퇴옹은 당시의 학술과 종교 현실이 가진 보수적 권위주

               의나 유교, 불교 교리의 선험성에 대해 전자는 급진적 해체의 길을 열었

               고, 후자는 내적인 순수성 심화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퇴옹은 돈오돈수론을 정립하고 지눌의 돈오점수론에 대한 회의

               를 하여 돈오돈수론을 실현해간다. 양명은 당시 주자학의 ‘정리’(定理)

               에 대한 회의에서 자신의  ‘심즉리설’을  수립한다.  어쨌든  퇴옹은
               당시의 한국불교를 ‘돈오점수’라는 테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양

               명은 당시 주자학의 ‘정리’에 대한 회의를 통해서, 끝내는 주자의 ‘선험

               적’(transzendental)인 ‘리’(理)를 죽였다. 니체가가 ‘신은 죽었다’(Got Ist
               Tott)고 선언한 것처럼 양명은 “(선험적인) 리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

               를 통해서 공부론을 버리고 본성 자체가 자기전개(=공부, 수행하는)하여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이른바 ‘조명’(造命: 내 운명은 내가 만든다)설 같은

                                           65)
               동양판 오딧세이의 길을 열었다.  여기서 양명학의 후예들은 한 걸음



               65)  왕양명의 제자 왕간(王艮. 자는 여지(汝止), 호는 심재(心齋). 1483-1541)은 심즉리를 적
                  극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창조한다는 이른바 ‘조명(造命)’론을 제시한다.
                  왕간의 ‘조명’ 사상은 ‘혼란의 사회’(=無)에 공공적 ‘질서’(=有)를 부여하는 유명한 꿈 체험
                  에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해 달라고 소리 지르자, 선생 홀로 팔을
                  뻗어 하늘을 밀고 일어나, 해와 달과 별들의 질서가 흐트러진 것을 보고는 또 손수 원래
                  대로 정리해놓”는 ‘나로부터의 새로운 질서’ 건립이었다. 왕간의 ‘땀’에서 읽을 수 있는 공
                  공적 구제 의식, 나아가서 ‘나로부터의 새로운 질서’ 건립은 그의 「추선부(鰍鱔賦)」에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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