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4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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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 『퇴옹학보』 제17집
든 사람이 아무런 수행 없이 그대로 부처라는 길은 열지 못했다. 아니
그런 길을 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퇴옹을 접견하기 위해서 제시하였
던 것으로 회자되는 ‘3천배’가 결국은 자신의 무진장이라는 광맥을 캐
는 곡괭이(=방법, 수단)로 용인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과정’의 중시=엄격성
이라는 형식은 남아 있었다. 양명학은 돈오돈수의 입장에 서면서 주자
학의 디시프린을 과감하게 버렸다. 반면, 퇴옹에게는 여전히 한국 주자
학에서 보는 선비정신 같은 엄격주의, 경건주의의 잔상을 발견할 수 있
다. 그렇다고 이것을 한국불교의 권위주의-주지주의-엘리트주의 같은
‘성속(聖俗)의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단정할 생각은 없다. 퇴
옹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삼천배’, ‘장좌불와’, ‘가야산 호랑이’ 같은 어
휘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같은 퇴옹의 은유적 화법은 사실 퇴
옹 개인의 가진 엄격주의, 엄숙주의, 경건주의 혹은 은둔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국 불교라는 전통 ‘텍스트’(text)는 ‘퇴옹 당시 한국불
교가 처한 상황+정치적 상황’의 경직성이라는 ‘맥락’(context)에서 ‘해
석’(interpretation)되는, 이른바 ‘해석학전 순환’(Hermeneutic circle)을 갖는
다는 것은 일정 부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시 사회의 정치적 경직
[大抵童子之情, 樂嬉遊而憚拘檢, 如草木之始萌芽, 舒暢之則條達, 摧撓之則衰痿. 今敎童
子, 必使其趨向鼓舞, 中心喜悅, 則其進自不能已. 譬之時雨春風, 霑被卉木, 莫不萌動發
越, 自然日長月化, 若冰霜剝落, 則生意蕭索, 日就枯槁矣. 故凡誘之歌詩者, 非但發其志
意而已, 亦所以洩其跳號呼嘯於詠歌, 宣其幽抑結滯於音節也; 導之習禮者, 非但肅其威儀
而已, 亦所以周旋揖讓而動蕩其血脈, 拜起屈伸而固束其筋骸也; 諷之讀書者, 非但開其知
覺而已, 亦所以沈潛反覆而存其心, 抑揚諷誦以宣其志也. 凡此皆所以順導其志意, 調理其
性情, 潛消其鄙吝, 默化其麤頑, 日使之漸於禮義而不苦其難, 入於中和而不知其故. 是蓋
先王立敎之微意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