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0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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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 『퇴옹학보』 제17집
는 『海東高僧傳』과 『三國遺事』 「義解」·「神呪」편과 같은 고려시대의 僧
傳은 단순한 인물소개에 그치지 않고 불교수용과 그 위상이나 가치를
천명하기 위한 배경 속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우리나라 최
초 승려들의 傳記集으로 알려진 김대문의 『고승전』이 통일신라 때 찬술
된 지 약 500년 이후에 각훈이 『해동고승전』을 편찬하였다. 각훈이 “불
교가 이미 중국 晋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행해졌기에 宋·齊시대
에 응당 호걸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고,” “중국으로 가서 불법을 물었던
자 또한 적지 않았을 것임에도 당시 史家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음은
한이 될 뿐”이라고 애석해하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고구려 승려에 대한
3)
기록을 남긴 것은 일차적으로 불교수용과 그 유포의 의미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각훈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
록 이역 땅에서 몸을 버리고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 공명은 뛰어남이
이와 같으니, 어찌 그 이름을 竹帛에 올려 후에 보이지 않을 것인가”라
고 한 것에서도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또한 「流通」편의 論에서 “周에
서 근원이 흘러 漢에서 갈라졌으며, 晋과 魏에서는 양양하였고, 唐에서
는 한만하였으며, 宋에서 물결이 일어 우리나라에 와서 깊이 흘렀다.”고
이해했다. 각훈의 이같은 인식의 바탕에는 당시 고려불교에 대한 자긍
심이 깊게 뿌리 박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4)
『해동고승전』은 적지 않은 오류도 지니고 있고, 사료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경우도 보인다. 서술 또한 문학적 표현이나 윤색이 많은 편으로
3) 김상현(1993), 121.
4) 김상현(1993),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