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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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불학체계와 그 특징 • 59
‘가언명령(假言命令)’이 아닌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이
다. 물론 부정과 긍정, 긍정과 부정의 의미에 적합한 구절들을 찾아 배
합했다는 점도 대단히 놀랍다. 명안종사(明眼宗師)의 안목을 가진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본칙(本則)을 짤막하게 비평한 ‘염(拈)’에 인
용된 구절을 살펴보자.
[13] “①칼에 맞은 흉터는 없애기 쉬우나 ②악담은 없애기 어려우니라.” 109)
①과 ②가 대응된다. 역시 ‘없애기 쉬우나’와 ‘없애기 어려우니라’로 긍
정과 부정이다. ‘착어’를 보자.
[14] “①조상이 영험치 못하니 ②앙화가 그 자손에게 미친다.” 110)
①과 ②가 대응관계로 ‘조상’과 ‘자손’, ‘영험’과 ‘앙화’, ‘못하다’와 ‘미친
다’가 짝이 된다. 조상은 위쪽이고, 후손은 아래쪽이다. 영험과 앙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못하다’와 ‘미친다’의 대립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생
각할 수 있으나 전체 문맥을 보면 조상 쪽이 영험하지 못해 영향이 후
손에게 미치므로, 영험과 앙화의 대립관계 속에 긍정과 부정이 충분히
표현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부정과 긍정, 중도의 공식이 “100%
딱 들어맞는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또 그렇게 되서도 안 된다. 화두나
공안은 항상 살아 있는 활발발(活潑潑)한 ‘활구(活句)’이기 때문이다. “대
109) 퇴옹(2020), 26.
110) 퇴옹(202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