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퇴옹학보 제17집
P. 58

58 • 『퇴옹학보』 제17집




               ‘기왓장 부스러기’와 ‘진금’은 ‘부정’과 ‘긍정’, ‘광명’과 ‘빛을 잃으니’는

            긍정과 부정을 각각 의미한다. 다른 구절들도 비슷하다. ‘수시’의 마지막
            구절도 그렇다.




                 “ 여기에서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 일을 마쳤
                 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두 번째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에 뿌리리라.”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 일을 마쳤으니’는 긍

            정, ‘그렇지 못하면’은 부정이다.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全機大用)
            을 보겠지만’은 긍정, ‘두 번째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

            에 뿌리리라’는 부정이다. 부정과 긍정, 긍정과 부정의 양변을 보이고 결

            국에는 양변을 버린다. 두 변을 막고 두 변을 비추는 ‘쌍차쌍조(雙遮雙
            照)’, 두 변을 없애고 두 변을 살리는 ‘쌍민쌍존(雙泯雙存)’의 방식이다. 결

            국은 올바른 중도의 견해, 즉 중도정견(中道正見)으로 유도한다. 『백일법

            문』과 『선문정로』에서 설명한 방식과 같다. 중도사상을 중심으로 깨달
            음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 『본지풍광』임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구절에 보이는 “여기에서”라는 말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체득하면 전기대용을 갖추고, 그렇지 못하면 더러
            운 물을 머리에 뒤집어 써야 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깨쳐라!”는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