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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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불학체계와 그 특징 • 57
라는 것은 극단 혹은 양변을 배격하는 것이다. 쌍차(雙遮)다. 그러나 일
이 이뤄지려면 ‘쌍차’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의지해야 한다. 쌍조(雙照)
가 필요하다. 다시 ‘수시’로 돌아가자.
“①이렇고 이러하니 ②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③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④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⑤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⑥가을
국화 누렇도다.”
①과 ④는 대립되는 관계다. 각각 극단, 즉 한 변(邊)을 가리킨다. ‘이
렇고 이러하니’[긍정]와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부정]다. ②‘하늘이 무
너지고 땅이 꺼지며’와 ⑤‘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역시 부정과 긍정
관계다. 주어는 무엇이 와도 크게 상관없지만 ‘꺼지는 것’은 부정이고,
‘달리는 것’은 긍정을 상징한다. ③‘해와 달이 캄캄하도다’와 ⑥‘가을 국
화 누렇도다’도 비슷하다. ‘캄캄한 것’은 부정이고, ‘누렇게 익어가는 것’
은 긍정을 의미한다. 부정과 긍정은 ‘같은 것’[一]이 아니다. 부정이 없으
면 긍정도 없으므로 ‘다른 것’[異]도 아니다. 불일불이(不一不異) 관계다.
공이자, 연기이자, 중도이다. ‘중도관(中道觀)’을 표현한 말들인 셈이다. 이
공식을 다른 구절에도 적용해 보자.
“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眞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