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퇴옹학보 제17집
P. 70
70 • 『퇴옹학보』 제17집
I. 서언
한국불교는 오랫동안 스스로의 정체성을 대승불교(Mahāyāna)에 두
고 있었다. 한국불교 사찰 불단의 중앙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샤
꺄무니 붓다(Śākyamuni Buddha)의 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불교 행
사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반야심경(Prajñāpāramitāhṛdaya sūtra)이 합송
되며 대한불교조계종은 금강경(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 sūtra)을 소
의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핵심경전
이라고 할 수 있는 반야심경과 금강경 그리고 법화경(Saddharmapuṇḍarīka
sūtra)과 화엄경(Avataṃsaka sūtra)이 역사적으로 실존했었던 샤꺄무니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것에는 어떠한 의심도 없었다. 근대 이후 불교경
전들에 대한 연구에 서구의 문헌학적 방법론이 적용되면서 역사적인 붓
다와 대승불교 경전들 사이에는 적어도 300~400년 이상의 간격이 있
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오늘날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이 역사적인 붓다의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사람은 거
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불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샤꺄무니 붓다와 자
주 합송하고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는 대승불교의 경전들 사이에서 정
1)
체성 문제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대승비불설 이란 이름으로 우리에
게 알려진 논의들 속에서 한국불교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떻
1) 퇴옹성철(2014), 11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