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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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 『퇴옹학보』 제18집



            Ⅰ. 논의의 배경




               퇴옹 성철(退翁 性徹, 1912-1993, 이하 ‘퇴옹’)에 대해 ‘현대 한국불교를 이

            끌었던 당대의 선지식’이라는 단적인 표현으로 그칠 수 있는 한국의 불

            교도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80년대 이전에 태어난 현대의 한국인
            들에게 퇴옹 성철은 어떤 의미일까? 해인총림의 방장으로서,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정으로서, 나아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으로서 끊임

            없이 불자와 대한민국인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화두를 쏟아내었
            던 당대의 본분종사(本分宗師)였던, 지금은 도리어 화두를 던졌던 이들에

            게 본분(本分)으로 돌아가는 화두 자체가 되어버린 인물. 그가 지향했던
            ‘불교적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본 논문은 이러한 지극히 기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만 이 질문

            은 지극히 기본적이기 때문에 너무 광범위하고 또 피상적인 논의로 흐
            르기 쉽다. 이 점을 고려하여 본 논문에서는 ‘교판(敎判)’을 논의의 핵심

            소재로 채택하였다. 현대 불교학에 이르러서는 ‘교판’의 무용론이 일각
            에서 제기되곤 하지만, 사실 그리고 여전히 ‘교판’만큼 그 주창자의 불교

            이해와 불교적 지향을 명료히 드러내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퇴옹이 해인총림의 초대방장에 추대된 그 해 하안거 동안 설한 ‘백일
            법문’은 그런 점에서 주목되는 법문이다. 근본불교부터 선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불교 사상을 ‘중도’의 관점에서 일관하여 재해석하는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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