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5년 1월호 Vol.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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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젖 (乳)과 피 (血)는
둘이 아니다
_ 원철 스님
가리왕과 인욕선인이 악연으로 만나다
붓다께서는 “전생에 가리왕(歌利王, kali는 ‘악하다’는 의미)에
게 신체가 낱낱이 찢어지는 상황을 당했을 때도 그 왕에 대
하여 분노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금
강경』에서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항상 잘 참은
까닭에 인욕선인 (忍辱仙人)이라고 불렸다. 그렇게 할 수 있었
던 힘은 ‘나의 몸이긴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의 몸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법칙에 대한 넘칠만큼
과도한 신뢰로써 무장했기 때문이다. 인연에 따라 조건이 모
인 것이 내 몸의 탄생이요, 인연이 다해 조건이 흩어지는 것
이 내 몸의 소멸이라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까지 덤으
로 합세했다. 이를 『금강경』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
(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는 이치’라고 고상하고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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