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5년 4월호 Vol.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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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를 마다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자리의 무거움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아서.
                   무거운 자리, 왕위를 버리고 밥을 빌어먹는 자리로 내려오

                 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무려 1,250명의 거지떼를 이끌고
                 사위성으로 밥 빌러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모두가 자리
                 를 포기하고 자유를 향해 가는 멋진 행렬이다. 그 행렬은 성
                 위 (聖位)를 이룬다.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무셨기에 모든 중생

                 을 짊어지는 지위에 오르신 것이다.
                   세속에서 지위는 확실히 차별을 의미한다. 불교의 지위도
                 차별이기는 하나 수다원부터 아라한까지, 신위 (信位)부터 지
                 위 (地位)까지 도를 닦아 얻어지는 결과를 뜻한다. 차례차례

                 거쳐서 부처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구의
                 본뜻, 밥을 빌어먹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아까 그분, 큰절 주지를 마다한 고암 스님은 평생을 간소
                 하게, 강직하게 살다 갔다고 한다. 이런 말을 남기고. “나는

                 도 닦는 데는 남보다 나을 것이 없다. 다만, 평소에 하는 일
                 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이다.”
                   자리싸움에 골몰한 요즘 세태에 따끔한 경책이 아닐 수
                 없다. ‘까이꺼, 왕위’는 아무나 못해도, 부끄러움을 안다면

                 그를 도 닦는 이라 하겠다.






                 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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