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고경 - 2015년 6월호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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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애중하게 여기셔서 수중에서 놓지 않고 중요한 것을 요
약하여 3권으로 된 『명추회요』를 만들어 세상에 널리 유전
케 하였다’고 법문하고 계십니다. 『종경록』 100권은 너무 방
대하니 후학들을 위해 『명추회요』를 번역했으면 합니다. 나
중에는 『오등회원』도 번역해 보겠습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법안종 3세로 추앙받는 스님이신데 『명
추회요』라도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으면 『종경록』 전체는 아
니지만 『종경록』이 어떤 책인지 짐작은 하게 되겠제. 『명추
회요』의 번역이 선수행과 교학 발전에도 도움이 되겠제! 그
러나 그거 어려운 책이라 번역이 제대로 되겠나? 그리고 『오
등회원』은 남송대의 사대부 서가에 반드시 꽂혀 있던 선어
록이지만 우리 시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
“하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딱 부러지는 거절이 아
니시고 번역 잘못될까를 걱정하시는 셈이니 저는 큰스님께
서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2집을 준비하겠다고 말
씀드렸습니다.
그리고 1993년 10월 초순에 한국 불교학자들과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을 비롯한 일본 선학자 몇 분을 초청해 해인
사에서 ‘선종사에서 돈오사상(頓悟思想)의 위상과 의의’를 주
제로 국제불교학술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큰스님께서는 편찮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셔서 얼
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한 달이 못되어 11월 4일 아침에 큰스
님께서는 열반에 드셨습니다. 해인사 연화대에서 인산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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