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고경 - 2015년 6월호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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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았다.
                     선사가 입적한 후에 강학(講學)하는 무리들에게 이 책
                   이 막혀 총림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희령 (熙寧, 1068~1077) 연간에 원조(圓照) 선사가 비로소 이
                   책을 출간하여 널리 대중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보살께서는 스승 없이 터득하는 지혜[無師智]와
                   저절로 터득하는 지혜[自然智]를 숨기고 오로지 보통지혜

                   만을 써서 모든 종파의 강사들로 하여금 서로 질문공세를
                   펴도록 하고는 자신은 심종(心宗)의 저울대를 가지고 그
                   이치를 고르게 달아 지극히 정묘한 이치를 절충시켰으니,
                   가히 마음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

                     이로부터 납자들이 다투어 그 책을 전하여 읽게 되었
                   다.
                     원우(元祐, 1086~1093) 연간에 보각(寶覺) 선사가 용산
                   (龍山)에서 좌선하며 보냈는데, 비록 덕이 높고 연세도 많

                   았지만 여전히 손에서 이 책을 놓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내가 이 책을 늦게서야 보게 된 것이 한스럽다. 평생
                   보지 못했던 글과 또 노력으로는 미칠 수 없는 이치가 그

                   속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는 요점만을 골라 세 권의 책으로 만들어 『명추
                   회요』라 이름하고서 세상에 널리 전하였다. 이 두 분의 노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후세에 총림에서는 숭상할 것이

                   없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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