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16년 1월호 Vol.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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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나하나에 집착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파도는 실체
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바람과 연기하여 일어났다 사라질 뿐
실체는 없습니다. 수많은 파도는 모두 바닷물일 뿐입니다. 그
러니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질 때 집착하거나 머무름은 허망
한 일이듯이 우리 마음에 번뇌망상이 물밀 듯이 오고가고 하
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화두에 집중해야 합니다. 『육조
단경』에 ‘번뇌 즉 보리’라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생각에
번뇌망상이 일어나더라도 뒷생각에서 알아차리면 지혜로 바
뀝니다. 번뇌망상조차 연기로 이루어져 있고 그대로 불성이
니 사실은 비우고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보고 오직
화두가 나를 평화롭게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가치
관과 믿음을 가지고 화두를 성성하게 챙겨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도거와 혼침은 화두 공부인이 흔히 겪는 문제
입니다. 도거는 적적을 방해하고, 혼침은 성성을 방해합니다.
도거는 성성의 잘못이고, 혼침은 적적의 잘못입니다. 정견과
발심으로 오직 화두만 챙겨나가되 번뇌는 신경쓰지 않으면
곧 공부가 자리 잡힐 것입니다. 대혜 스님은 『서장』에서 이렇
게 말합니다.
“앉을 때에 혼침 (昏沈)하지 말며, 또한 도거(掉擧)하지 말
아야 합니다. 혼침과 도거는 옛 성인이 꾸짖은 것입니다.
고요히 앉았을 때 이 두 가지 병이 앞에 나타나거든 단지
‘개가 불성이 없다’는 화두만 드십시오. 그러면 두 가지
병은 힘써 물리치지 않아도 당장 고요해질 것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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