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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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까지의 약 135년 동안을 가리킨다.
              사실 이들 ‘다섯 민족’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오호五胡’라는 말이 없었
            다. 이 말은 4세기 중반 무렵 등장해 6세기 전반 즈음에 용법이 정착된 것

            으로 추정된다. ‘십육’이라는 숫자 역시 정확한 것이 아니다. 북위 말의 역

            사가 최홍(崔鴻. ?∼525)이 자신의 저서 『십육국춘추』에서 사용해 고착화 된
            숫자일 뿐, 실은 더 많은 나라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
            은 오늘날 중국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오랑캐’[胡]라는 단어를 거

            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니 사용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다. “한족漢族과 55개의 소수민족 즉 56개 민족으로 이뤄
            진 중화민족, 단결된 중화민족”를 강조하다 보니 중국정부가 오랑캐라는
                                          5)
            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아무튼, 구심력 보다 원심력이 아주 강하게 작용했던 이 시대의 중심 무

            대는 장안(長安. 섬서성 서안) 일대의 관중關中지방과 업(하북성 임장현)·중산
            (中山. 하북성 定縣부근)·양국(襄國. 하북성 邢台市)을 중심으로 한 관동關東지
            방 등 두 곳이었다. 두 곳에서 다섯 민족의 영웅·호걸들이 변화무쌍한

            여름 하늘의 구름처럼 일어나 화북지방의 패권을 다투었다. 흉노족 유劉

            씨의 한(漢. 304∼318)·전조(前趙. 318∼329), 흉노계인 갈족 석石씨의 후조
            (後趙.  319∼351),  선비족  모용(慕容)씨의  전연(前燕.  337∼370)·후연(後燕.
            384∼407)·서연(西燕. 384∼394)·남연(南燕. 398∼410), 선비족 탁발拓跋씨의








            5)  이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이 있다. 2012년 11월 수업시간에 담당교수가 민족들의 역사를 설명하다 무

             심코 오호五胡의 중국식 발음인 “우후”를 사용했다. 순간 얼굴색이 변한 그는 학생들 앞에서 “미안합
             니다!”는 의미의 중국 말 “뿌하오이쓰(不好意思)”를 3분 정도 되풀이 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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