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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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답은 수행자들에게는 간명한 것일 테지만, 일반인에게는 매우 어려
운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대답은 오랜 훈련과 반복적 체험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학에서는 ‘자연적 태도의 일반정립’을 해소하는 방법을 ‘판단중
지’(epoche, 에포케)라고 부른다. 일반정립을 하는 판단을 중지한다는 것이
다. 그런데 판단중지, 곧 에포케는 그리스어ἐποχή로서 원래 ‘자기-억
제’Ani-sich-halten를 의미한다. 이것은 아집과 법집에 이르는 판단으로부터
자기를 억제하는 것이다. 아집과 법집으로부터의 자기-억제가 불교에서
는 열반의 관문으로 제시되는 반면에, 일반정립으로부터의 자기-억제가
현상학에서는 의식 분석의 출발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자기-억제
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무경無境을 납득하지 못하겠고, 유식唯識도 납
득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집과 법집에서 벗어나려면, 이론적
논의 외에 실천적 수행이 필요하다.
현장은 『성유식론』의 끝부분에서 ‘오직 심식일 뿐’[唯識]이라고 말할 뿐
‘오직 대상일 뿐’[唯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호법의 입장을 소
개한다. 호법의 입장 속에서는 ‘마음 관찰’[觀心]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리석은 범부들이 대상에 미혹되고 집착하여, 번뇌와 행업을
일으키고, 생사[의 윤회]에 빠져들고, 마음을 관찰[觀心]하여 [생사
의 윤회로부터] 벗어남을 힘써 구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들을 애처롭게 여기기 때문에, ‘오직 심식일 뿐’이라는 말을 하
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마음을 관찰[自觀心]하여 생사에서 해
탈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내부 대상이 외부 대상처럼 모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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