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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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휘둘렀다.
              한나라 조정朝廷이 동요하고 불안하자 군웅들이 각 지역을 나눠 점령하
            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전쟁과 소용돌이 끝에, 하북성 기주冀州에 웅거한

            원소의 10만 대군과 산동성 연주兖州와 하남성 허창許昌을 기반으로 한 조

            조의 2만 군대가 화북지방의 패권을 놓고 200년 하남성 관도官渡에서 맞붙
            었다. 패퇴한 원소와 그 후계자들을 몰아친 조조는 204년 원소의 근거지
            업성(鄴城. 하북성 임장현)을 장악하고, 207년엔 요동 유역까지 정복해 화북

            지방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건안建安 13년(208) 유비·손권 연합군이 지금의 호북성 가어
            현嘉魚懸 부근의 적벽赤壁에서 조조 군을 격파하자, 후한은 결국 위·촉·
            오로 갈라진다. 세 나라 지도자들은 앞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뒤로는 흑

            심·뻔뻔함·권모술수를 무기武器삼아, 축록(逐鹿. 사슴몰이 → 황제 자리 차지

            하기)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서기 220년 “잘 다스려진 시대에는 간사한 도적, 어지러운 시대에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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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 이라는 인물평을 받았던 조조가 병으로 죽자, 아들 조비(曺丕.
            187∼220∼226)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 유협(劉協. 181∼189∼220. 234년死)

            을 핍박해 같은 해 음력 12월 29일 황제 자리에 올랐다. 조위(曺魏. 220∼265)
            의 출발이다. 찬탈이나 다름없지만 요순堯舜의 고사를 본 떠 표면을 아름
            답게 살짝 바꾸었기에 선양禪讓이라 부른다. “왕위 양보”라는 의미의 선양

            은 전한 말의 왕망(王莽. 기원전45∼기원후8∼23)이 시작했지만, 정형화된 것







            6) “ 淸平之奸賊, 亂世之英雄.” [南朝宋]范曄 撰, 簡體字本二十四史08 『후한서後漢書』卷68 「許邵傳」, 北京:
              中華書局, 1999, p.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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