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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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여질까? 도올은 친구들에게 우상숭배의 헛것이 다름 아닌 그들 자
신의 관념에 있다는 점을 일깨우며 상쾌해했다.
“문수와 보현은 변소 치는 사람”
그러나 진정 불교 안에는 우상숭배가 없는 것일까?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진정한 자유, 다시 말해 해탈의 즐거움을 맘껏 구가하고 있는 것인
가? 불교는 결단코 우상숭배의 종교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불조
를 공격하면서 관념적 우상을 경고했던 8~9세기를 훨씬 지나 21세기를 살
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얼마나 우상의 틀에서 벗어나 있을까? 시대는 과학
과 문명의 최첨단을 살고 있다는 21세기지만 우상의 형상은 원시형태를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여전히 우리는 ‘헛것’에 매달리
고 ‘가짜’에 속으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헛것과 가짜에 속지 않고 살 수 있
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령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 끝을 보
나?’라고 했을 때 달을 잘못 가리키는 스승의 손가락이라면 가차 없이 잘
라내야 한다. 그래야 바로 볼 수 있다. 과거 선사들이 살불살조를 내세운
이유는 관념에 집착하게 되면 가짜 부처와 조사의 형상에 매달려 수행에
대한 진척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自燈明 法燈明]”는
부처님의 유훈遺訓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등
신불에 의지하고 매달리는 게 일반적인 신도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
찰 어디에 가든 불상 앞에서 동그랗게 손을 말아 엎드려 절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불교가
기복祈福으로 빠진다면 우상은 타파해야 할 대상이다. 불교는 작인작과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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