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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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마주한 ‘청졸’淸拙
마침 ‘법정스님 계신 곳’으로 가기 전날 문득 책상에 앉아 있다가 『조
정사원』을 아무데나 펼쳤다. 운 좋게도, 그 때 턱 마주친 단어가 <한적할
‘청’淸, 질박할 ‘졸’拙> ‘청졸’淸拙이다. 어쩐지 이것이 법정스님을 표현하는
말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악(潘岳. 247∼300, 중국 서진西晉 때의 사람)의 ‘한거부’閑居賦 ‘서’
序에서 말한다. “졸拙이란 것은 총애와 영광[寵榮]의 일에 대한
뜻을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집 짓고 나무 심고서, 소요消搖하며
1)
자득自得하는 것, 이것이 청졸淸拙이다.”
청졸은 한마디로 ‘한적하면서[淸] 질박함[拙]’이다. 자연에 기거하며, 세
속의 번잡한 일들을 끊고, 오두막집이나 짓고 나무나 심으며 소요하면서
자신의 내면적 깨달음에서 의미를 찾는 생활을 말한다. 즉 소유가 아닌 ‘존
재’(=무소유)로, 구속이 아닌 ‘자유’로 향한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법정스
님의 ‘무소유, 자유’의 삶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대중을 위해서라면 ‘말에 기대서’라도
우리 사회에서 과연 ‘무소유, 방랑, 자유’가 어디까지, 얼마나 가능할까.
1) 睦庵善卿, 『祖庭事苑』 : 潘岳閑居賦序曰, 拙者, 可以絶意乎寵榮之事, 築室種樹, 消搖自得, 此淸拙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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