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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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는 중죄重罪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시무시할뿐더러 아무
리 속가를 버리고 출가한 이라 할지라도 극악무도한 패륜아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여기엔 관념에 집착하면 본분사를 망가뜨리게 된다는 경계를 담
고 있다. 관념이란 다름 아니다. 어떤 이미지나 인식을 절대화하면 그 틀
에 갇혀 오히려 구속되고 만다. 임제는 이것을 경계하면서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즉, 어머니를 해친다는 것은 애착으로부터 빠져나오라는 의미
이고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아라한을
죽임은 근기 낮은 행동과 헛된 깨달음을 경계하는 것이며, 화합승가를 깨
뜨린다는 것은 허공과 같이 꾸밈이 없는 곳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
의 몸에 피를 낸다는 것은 청정한 법계 가운데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자유로움을 누리라는 뜻이다. 임제의 이러한 설명은 결국 관념과 집착에
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라는 뜻으로 그가 말한 살불살조와 의미
가 통한다.
덕산선감(德山宣監. 778~863)도 임제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불조佛祖를 관
념적 우상으로 떠받드는 풍조를 비판적으로 봤던 덕산은 다음과 같은 독설毒
舌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역대 선사들과는 생각을 달리한다. 부처도 없고
조사도 없다. 보리달마는 냄새나는 야만인에 불과하다. 석가모니는 별 볼 일
없는 밑씻개요, 문수와 보현은 변소 치는 사람이다. 삼먁삼보리와 오묘한 깨
달음이란 족쇄를 벗어난 평범한 인간성에 지나지 않으며 보리와 열반은 당
나귀를 매어두는 나무 기둥에 지나지 않는다. 12분교의 교학이란 귀신의 장
부일 뿐이며 종기에서 흐르는 고름을 닦아내는 휴지에 적당하다.”
교조와 교리를 비판하는 것은 근본을 뒤흔드는 일이다. 종교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는 가장 끔찍한 벌과가 주어진다. 기독교에 익숙한 서양 청
년들에게 ‘살불살조’와 교조를 밑씻개로 비유하는 선사들의 독설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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