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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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본질은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호에 살펴본 이사원융의理事圓融義는 이와 같은 현상[用]과 본질[體]
            이 둘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번에 살펴볼 ‘사문십의四門十義’ 역시 그와 맥

            락을 같이하는 교설이다. 이사원융의가 본질과 현상이라는 두 가지 개념

            으로 설명했다면 사문십의는 네 가지 범주로 설명하는 것이 차이다.
              성철 스님은 법장의 『화엄경탐현기』와 청량의 『대방광불화엄경소』를 통
            해 사문의 의미를 설명한다. 화엄종의 핵심사상을 화엄종취라고 하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문이 사문이다. 사문은 현상과 본질, 주체와 객

            체, 본체와 작용이 갖는 연기적 관계, 존재의 중도적 특성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살구라는 개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드러난 작용이자 현
            상이다. 살구를 영글게 한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성이야말로 근원적 이법

            이며, 개체를 넘어서 있는 본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화엄종취로 들어가는

            네 가지 문은 한 알의 살구라는 개체와 그 살구를 있게 만든 우주적 이법
            에 대한 설명이다.
              네 가지 문 가운데 첫째 문은 본질[體]이 곧 현상[用]이라는 것이다. 겉으

            로 드러나 있는 모든 존재의 본질을 궁구해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법을 만나는데, 그것은 개체를 초월해 있음으로 공空이다. 연기라는 본질
            은 보이지 않는 공空이지만 무수한 존재들과의 관계와 인과를 통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법장은 『탐현기』에서 “법계를 포섭하여 인과를 이룬다[攝法界以成因果]”고

            했다. 화엄종에서 체·용을 구분하여 말할 때 법계法界는 본체를, 인과因
            果는 작용을 의미한다. ‘법계를 포섭해서 인과를 이룬다’는 것은 본체를 포
            괄해 보면 그것이 곧 작용이라는 의미다. 공이라는 본질은 보이지 않지만

            공은 삼라만상이라는 갖가지 현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체 그대로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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