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P. 145

인용문에서 보듯이 제법이 공한 것은 연기 때문이다. 조건들에 의해 생겼
            기에 일체의 사물과 현상은 공하며, 실체를 가진 자성이 없다. 설일체유부
            가 건립한 자성·법체의 허상虛像은 여기서 완전히 깨져버렸다. 용수보살이

            “연기이기에 공하며, 공이기에 자성이 없다.”는 무기로 제법에 자성·타성

            이 있다는 주장을 논파하고, 나아가 ‘사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유實有와
            ‘아무 것도 없다’는 진공眞空마저 깨트리고 나자, 비로소 일체법이 제대로 성
                       71)
            립하게 됐다.  용수보살의 논리적 공격을 받은 설일체유부의 교세는 점점
            약해졌다. 설일체유부와 여기서 분파된 경량부의 영향을 받은 한 무리의

            학승들이 그 공간을 비집고 성공性空에 토대를 둔 새로운 유종有宗, 즉 유식
            학파를 5∼6세기경 건립한다. 유물론적 경향을 가진 부파불교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유심론적인 대승불교가 주류가 된 것이다. 『반야경』과 중

            관학파의 출현은 불교사상사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그들은 불교를 해석

            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으며, 주관과 객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도 깊이 있는 철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중관학파의 관점과 불교해석은 구
            마라집의 역경과 승조의 『조론』을 통해 동아시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

            친다.









            71)  이에 대해서는 『조론』 본문을 해석할 때 자세하게 설명한다.



                                   활인검
                                   2012년 6월 북경대 철학과에서 북송 선학사상 연구로 철학박사학
                                   위 취득. 2018년 6월 중앙민족대 티벳학연구원에서 티벳불교 연
                                   구로 박사학위 취득.



                                                                        143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