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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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청문승聽聞乘의 경지에
는 도달해 있을 것이다. ‘모든 분별을 떠난 상태는 있다고 여겨지는 상태도
아니고, 없다고 여겨지는 상태도 아니다. 그런 상태를 다른 말로 공空이라
고 한다.’ 모든 분별을 떠난 상태는 그렇다면 공空의 상태이다.
3. 그런데 청문승의 경지를 이미 넘어선 사람이라면 미소를 지으며 내
심 말할 것이다. ‘공도 역시 존재나 무와 구별되는 말이니, 분별로 생긴 말
입니다. 공空도 공해야 공空 합니다.’ 지당한 말씀이다. 공空이라는 말도 역
시 모든 분별을 떠난 상태에 대한 비유일 뿐, 이 상태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청문승은 연각(緣覺, 인연에 따른 생주이멸의 깨우침)을 시도할 것이다.
인연에 따른 생성[生]과 소멸[滅]이 바로 공空이라는 것을, 또한 인연에 따
른 머묾[住]과 변화[異]가 바로 공空이라는 것을, 곧 생주이멸이 모두 있지
도 않고 없지도 않은 상태라는 것을 체험으로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확인을 위해 말을 참고 침묵을 행할 것이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통해 말하지 않으
면 글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연을 통한 생주이멸의 상태가 의타
기성이다. 생주이멸의 상태이기에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상태가 원성
실성이다. 현재에 있는 것에 가질만한 것이나 피할만한 것이 있는 상태가,
또 미래에 있는 것에 고대할만한 것이 있거나 과거에 있는 것에 한탄할만
한 것이 있는 상태가 변계소집성이다.
4. 이쯤 되면, 다시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겨날 수도 있다. 3성이 세 가지
상태라면, 대체 누구의 상태이고 무엇의 상태란 말인가? 3성은 서양 철학
의 언어로 말하면 존재자들이 갖는 상이한 세 가지 존재방식을 말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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