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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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압권은 그 다음이었다. 그쪽 스님들은 거리낌 없이 익혀진
짐승들의 다리를 부여잡고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다. 속인들의 거
나한 회식자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셈이다. 한국보다 미얀마가 더
잘 살던 시대다.
= 그래서 홈 홈 스위트홈, 모든 익숙한 것들은 달콤하다.
매일같이 풀떼기만 씹던 터라 끝내 요리에 젓가락도 대지 못한
자운은 겸연쩍어 주위를 둘러봤다. 폭이 3미터가 넘는 대형 칠판
에 빼곡하게 글자가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스님들을 대접하지
못해 안달을 내던 신도들의 시주施主를 기록한 현황판이었다. 수
도원의 승려들이 하나같이 뚱뚱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했다.
= 얻어먹는 일은 창피하지만, 그래도 배가 부르고 조금 더 남는 것도 있다.
평소 동남아시아 불교를 불교의 원조라 존중했고 남방의 스님들
이 누구보다 계율을 철저히 지키리라 믿었던 자운은 크게 실망한
채 귀국했다. ‘저렇게 먹으니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그것도 낮
12시 이전에만 먹어야 한다는 계율)이 가능한 게로군.’
= 네들이나 나나, 결국은 그냥 돼지들이구나!
자운은 제자들의 영화 관람조차 금지했고 사하촌寺下村에서 자장
면이라도 먹고 오면 그 즉시 절에서 쫓아내던 성격이었다. 해인
사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봐라.” “먹
어.”
= 우리 집에는 ‘우리들’이 있다. 내 새끼들이 돼지고기가 되는 꼴은 못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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