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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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놓고 불꽃 튀는 쟁론을 벌
인 것이다.
불교사에서 보기 드문 논쟁이,
639년 즈음에서야 비로소 불교
가 전파되고 공인된 토번에서 벌
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쟁론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
장들이 있다. 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교리해석과 수행방식
의 차이, 왕실과 귀족 사이의 권
력투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교리논
쟁으로 비춰지나 왕실과 귀족 사
도서출판 씨아이알이 번역·출간한
폴 드미에빌의 『라싸 종교회의』. 이의 정치투쟁적 성격도 이면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
토번의 역사를 기록한 책 『바세 དབའ་བཞེད། 』에 쟁론이 발생된 배경을 알려주는
기록이 전한다. 약간 길지만 자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① 양의 해 겨울 삼예사에서 성대하게 점안법회를 한 후 ……
4)
짼뽀가 말했다. ……대신 이하 모든 신하들은 (불교를 믿기로) 맹
4) 이 해가 787년이라는 설과 779년이라는 설이 있다. 후자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삼예사가 775년에 건
립되기 시작해 5년만인 779년에 완공됐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전자의 학설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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