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P. 47
문을 퍼트리며 괴롭히자 예세왕
뽀는 한적한 곳으로 수행하러 가
버렸다. 짼뽀는 빠양을 승통으로
임명했다. 치송데짼 당시 토번의
평민과 귀족 사이에 불교적 신앙
과 관직을 놓고 대립이 있었음
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즈음 중
국에서 마하야나(일명 마하연摩訶
衍) 화상이 토번에 들어와 활발
8)
하게 활동했다. 토번 제자들도
생겼다. 따라서 마하야나가 토
번에 들어온 시기가 삼예사 건
립 이후임을 알 수 있다. 대략
도서출판 운주사가 펴낸 『티베트
791년 즈음이다. 9) 돈점 논쟁 연구』.
인용문 ②도 적지 않은 사실을
알려준다. 마하야나의 제자들과 기존 불자들 사이에 교리해석과 수행에 대
한 차이가 점차 생겨났다. 관점의 차이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논쟁
이 점점 격화되어 신체적 가해를 행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이런
사실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를 맹신하는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이 불상
8) 마하야나가 토번에 들어오기 전인 781년 돈황 일대가 토번에 편입된다. 토번의 돈황 지배는 848년까
지 계속된다. 즉 846년 토번왕조가 멸망하면서 통치력을 상실한다. 마하야나는 돈황에 거주하고 있
었다.
9) 周拉著, 『莲花戒名著《修习次第論》研究』, 北京:宗教文化出版社, 2010, p.31. 781년에 토번으로 갔다
는 주장도 있다.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