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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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본무라고 부른다.
[3] ① 言不有、不無者, 不如 有見、常見之有, 邪見、斷見之無耳. 若以有為
6)
有, 則以無為無. 有旣不有, 則無無也. ② 夫不存 無以觀法者, 可謂識法實
7)
相矣. 是謂雖觀有而無所取相. 然則法相為無相之相 , 聖人之心為住 無所
8)
9)
住 矣. ③ 三乘等觀性空而得道也. 性空者, 謂諸法實相也. 見法實相, 故云
10)
正觀. 若其異者, 便為邪觀. ④ 設二乘不見此理, 則顛倒也. 是以三乘觀法
無異, 但心有大小為差耳.
[3] ①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있음과 항상 있음을
말하는 견해의 있음’과 ‘그릇된 견해[없음]와 항상 없음을 말하는 견해의 없
음’과는 다르다. 만약 있음이 항상 있음이라면 없음은 항상 없음일 것이다.
있음이라는 말이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듯이 없음이라는 말도 ‘아무 것도
없음’은 아니다. ② 무無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법을 보는 자를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만물을 관찰하나 그들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한 즉 제법의 모습은 ‘모습 없는 모습’
이기에 성인의 마음은 사물을 관찰하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③ 성
문·연각·보살도 성공을 관찰하고 깨달았다. 성공이라는 것은 제법의 실
상이다. 법을 보고 실상을 보는 것을 정관이라 말한다. 만약 이와 다르면
그것은 그릇되게 보는 것이 된다. ④ 성문과 연각이 이 이치를 깨닫지 못
6) ‘불여不如’는 다르다는 의미다.
7) ‘존存’은 집착하다라는 뜻이다.
8) 무상지상無相之相도 일종의 상相이다. 성공性空에 정통한 승조가 이런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9) 첫 번째 주住는 관찰하다 혹은 관찰 후 얻은 인식 등을 뜻한다.
10) 두 번째 주住는 집착하다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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