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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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금 네 편의 글은 첫 번째이지 두 번째는 아니다.
              “後秦長安釋僧肇作.” 《通鑑》說:  “符健據關中國號大秦,  至符堅末年,
            姚萇篡立亦號為秦.” 故史家乃以前後字別之. 論主在後秦也. 長安即今安

              35)
            西 . 釋謂釋迦, 即僧之通姓, 以如來姓釋迦氏故也. 安公創式, 遠叶阿含,
            千古遵依, 迄今未替. 僧肇即論主之諱.
              “후진 장안 석승조 지음.” 『자치통감』에 “부건이 관중지방에 근거해 나
            라를 대진이라 불렀고, 부견 말년에 이르러 요장이 찬탈해 국호를 역시 진

            이라 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전·후 자字를 붙여 구별한다.

            논주는 후진 시대 사람이다. 장안은 지금의 안서(서안)이다. 석釋은 석가를
            말하는데 즉 스님들의 통성通姓이다. 여래의 성씨姓氏가 석가 씨이기 때문
            이다. 도안이 처음 이 법식을 제정했는데 멀리 가섭 존자가 편찬한 『아함

            경』에 연원을 두고 있다. 오랜 세월 이 법식을 준수했고, 지금도 바꾸지 않

            고 있다. 승조는 논주의 이름이다.
              《本傳》略云: “京兆人, 歷觀經史, 備盡墳籍, 志好玄微, 每以莊老為心要,
            故歎曰: ‘美則美矣, 然其棲神冥累之方猶未盡善.’ 後見舊《維摩經》, 歡喜頂

            受, 乃言始知所歸矣. 因此出家學善方等, 兼通三藏, 聞羅什在姑臧, 自遠從

            之, 什嗟賞無極, 及什來長安, 肇亦隨入, 姚興勅令入逍遙園, 詳定經論, 所
            著四論, 并註《維摩經》, 及製諸經論序, 並傳於世.” 作, 猶製也、造也. 義誠                  36)
            佛說論自已為, 蓋作其辭, 而弗蘊其義也.

              『고승전·승조전』에 “장안 사람이다. (유교)경전과 역사책들을 두루 보았







            35)  안서安西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1272년 셋째 아들을 안서왕으로 봉하고 서안에 안서왕부安西王府
              를 지었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1369년 서안부西安部로 개칭했다.

            36)  ‘성誠’은 접속사로 ‘만약’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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