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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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왜 그런가? 만약 지금 축법태의 『본무론』을 모
았다면 왜 「부진공론」 초반에 본무의 의미를 비판했겠는가? 그리고 또 혜
원이 『법성론』을 지었는데 스스로 “성공은 법성인가?” 묻고는 “아니다.”고
대답했다. 성공性空이라는 것은 공한 바를 이름으로 삼은 것이고, 법성은
법의 진성眞性은 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어떻게 (이들을)
모아 하나로 만들었겠는가?
復有人言: “支法詳作《實相論》, 今會此論.” 此釋彌復不然. 支法詳不見
什法師, 承來至關中乃作書, 問什法師門人釋慧儀實相義, 慧儀報答, 名
此為《實相論》. 此並是肇法師同時人, 才學又在肇法師下, 寧肯會釋此人所
作論耶! 必不然也. 今直云此五家, 是經論中大義, 有人謂同; 有人謂異. 肇
法師今會之為一, 不言異也. 又‘本無’等四為真, ‘緣會’為俗, 今會此真俗二
諦不異也.
또 어떤 사람은 말했다. “지법상이 『실상론』을 지었는데 지금 이 논을 모
았다[모아 해석했다].” 이 설명은 더한층 아니다. 지법상은 구마라집을 보지
못했다. 그가 관중지방에 도착해 구마라집의 문하인 석혜의에게 실상의 의
미를 물었고, 혜의가 답했다. 이 글이 『실상론』이다. 이들은 승조와 동시대
사람들이 아니고, 재주와 학덕 또한 승조 보다 못하다. 어찌 승조가 이들
의 글을 모아 해석했겠는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다
섯 가지는 경과 논 가운데의 중요한 의미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다섯 가
지가 내포하는 의미가) “같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다르다.”고 말한다. 승
조가 지금 다섯 가지를 모아 ‘하나’라고 한 것은 (다섯 가지가 내포하는 의미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한 ‘본무’ 등 넷은 진제이고, ‘연회’
는 속제에 해당된다. 지금 진제·속제[이제]를 모아 (내포하는 의미가) 다르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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