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P. 140
「부진공론」에서 “어찌 잘라내어 통하도록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것은
소승의 ‘색을 분석해 공’이라 부르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열거한 이름들은
근본에서 말단에 이르는 것이고, 이 가운데 의미를 추리하는 것은 말단에
서 근본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근본과 말단이 함께 용해되어 앞
도 뒤도 없고, 같음도 다름도 아니다.
[3] [본문] ① 言不有、不無者, 不如 有見、常見之有, 邪見、斷見之無耳. 若
61)
以有為有, 則以無為無. 有旣不有, 則無無也. ② 夫不存 無以觀法者, 可謂
62)
識法實相矣. 是謂雖觀有而無所取相. 然則法相為無相之相 , 聖人之心為
63)
住 無所住矣. ③ 三乘等觀性空而得道也. 性空者, 謂諸法實相也. 見法實
64)
相, 故云正觀. 若其異者, 便為邪觀. ④ 設二乘不見此理, 則顛倒也. 是以三
乘觀法無異, 但心有大小為差耳.
[3] [원강소] ① “言不有不無者”下, 第二、明非有非無宗, 為《不真空論》之
宗本也. “言者”謂經論所言也. 《大品經》云: “色非空非不空, 受想行識非空
非不空.” 《涅槃經》云: “佛性非真如虛空, 非無如兔角.” 《中論》云: “定有
66)
65)
則著常, 定無則著斷. 是故有智者, 不應著有無.” 今通釋經論此語.
67)
61) ‘불여不如’는 다르다는 의미다.
62) ‘존存’은 집착하다는 뜻이다.
63) 무상지상無相之相도 일종의 상相이다. 성공性空에 정통한 승조가 이런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
다.
64) 첫 번째 주住는 관찰하다 혹은 관찰 후 얻은 인식 등을 뜻한다. 두 번째 주住는 집착하다로 해석된
다.
65)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바라밀다경 권72·초분관행품 19之3』에 있는 구절이다.
66) (36권본)대반열반경 권제33·가섭보살품 제24之3』에 있는 구절이다.
『
67) 『중론 권제3·관유무품觀有無品』의 10번째 게송이다.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