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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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노라.” 『잡아함경』
위 경전에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는 구절은 부처님 법의
완전무결함을 뜻하지만, 최선의 의미와도 계합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
서라면 인간이 현실 속에서 최선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
르겠습니다.
전쟁 기술로 개발된 인터넷이 인류에 엄청난 편익을 안겨 주었지만 폐
해도 적지 않습니다.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만 이용한다고 해서 파국의 가
능성이 제거되지는 않습니다. 독재의 과실이 아무리 커도 인권 유린의 면
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류 문명과 역사의 양가적 속성이지요. 동기의
선함이 과정과 결과의 선함까지 보장하지 않습니다. 동기와 결과가 좋다
고 해서 과정의 허물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최선이란 동기와 과
정, 결과가 모두 좋은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동기와 과정, 결과가 모두 가장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
을까요. 있다면 그가 바로 성인이겠지요. 누구든 스스로 진정 최선을 다했
다고 믿을 수 있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나 아니면 공동 목
적을 가진 집단 내부에서나 할 말이지요. 성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듯이 말입니다. 최선은 가치 평가의 언어입니다. 참 무겁습니다. 무시무
시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무겁고 어려운 말을 참 쉽게 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말하는 최선은 사실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
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합니다.
일등하기 위해서, 금메달 따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좋은 대학 가
기 위해서. 노력도 모자라 ‘노오력’ 하고 삽니다. 그것을 우리는 최선으로
믿고 서로를 격려하고 칭송하기도 합니다. 결과를 떠나서, 그 노력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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