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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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를 봤다. 수비에만 급급한 것이 천성이었던 것이다. 재산이 생기고
세금이 늘어나면서, 더욱 공고한 보수주의자가 되어간다. 젊어서는 진보
주의자인 척 했다. 내가 좋아했던 달콤함이 가득했던 말이니까. 더구나 또
래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쪽이었고 고립되지 않기 위해 그쪽을 택했다. 사
실, 지킬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그랬다.
정말로 많이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여길까? 나는 ‘그
들의 소유는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계산하지 못할 만큼 많을 것이다’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손에 쥔 것이 빤하니까, 누가 내 것을 앗아갈까 철저
히 마음을 잠가놓는다. 일례로 보수는 ‘좋은 것을 지키자’는 정신이고 진보
는 ‘나쁜 것을 바꾸자’는 정신이라는데…, 나는 ‘나에게’라는 보어補語가 생
략됐음을 모르는 인간이라며 그의 이해력을 비웃는다. 사회생활이란 사람
을 어디까지 미워할 수 있는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으며 조심조
심 기어간다. 지킬 것은 고작 몇 방울인데, 잃은 것은 벌써 하천을 이뤘다.
삶을 돌아보면, 실수가 많았다. 누가 “잘못 살았다”고 한다면, 그냥 “잘
못 살았다”고 하겠다. 여하튼 청춘에 먹던 밥과 누던 똥을 나이 들어서도
먹고 눈다. 과거의 현실이나 현재의 현실이나 기본적인 현실은 전혀 변하
지 않은 셈이다. 지난날의 그 많은 밥과 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내가 거닐었던 평야의 거름이 되었는지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갯벌의 진흙
으로 뒹구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위를 떠다니는 풀잎이나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강의
하구엔, 내가 기억하지 못할 시간들이 더 드넓고 짭짤한 물의 모습으로 기
다리고 있다. 그걸 추억이라 부르든 악몽이라 부르든 무의미하다.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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