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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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토로하였으니, 그 공적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새로
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구마라집이 삼론과 반야경을 한역하자, 그를 추종한 수 많은 문도들 중
에 삼론을 학습하고 저술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후대에 삼론학자
길장吉藏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마라집의 3천명 문도 중애 (가장 뛰어나)
1)
입실入室한 사람은 오직 8명으로, 그 중에 승예僧叡가 수령이었다 고 하였
는데, 8명 가운데 연장자인 승예는 『중론』과 『십이문론』 등의 서문을 지었
고, 연소자인 승조는 유명한 『조론肇論』을 저술하였으며, 담영曇影은 전하
지 않지만 『중론소中論疏』 2권을 저술하였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중론』
2)
에 주론註論한 이들이 70가家에 달했다고 한다. 일찍이 중국에서 『중론』에
대한 열기가 그토록 뜨거웠다는데, 현재 전하는 주석서가 하나도 남아 있
지 않으니, 그 간의 사연을 어찌 알겠는가.
3. 중국 삼론학파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여기에 수반되는 곤란
한 사항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중국불교 초반기에 형성된 삼론학파의 역
사가 오래되어 수많은 삼론학자들의 생애를 추적하기도 어렵고, 중국은 물
론 한국 삼국시대의 여러 삼론학자들의 저술이 거의 다 없어지고 소수만
남아 있어 학설의 전모를 밝혀내기도 곤란하다. 다행히 삼론학 문헌이 다
수 전해지는 일본에서 먼저 삼론학파의 계보설이 제기되었다, 초조 구마
1) 길장吉藏, 『중관론소中觀論疏』 제1권본本, “門徒三千, 入室唯八, 睿爲首領, 老則融睿, 少則生肇.”
(T42-p1a)
2) 길장吉藏, 『중간론소中觀論疏』 제1권서소序疏, “此出注論者, 非復一師. 影公云凡數十家, 河西云
凡七十家.”(T42-p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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