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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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산책 8
“마음과 짝하지 말라”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문학평론가
보조국사 지눌(1158∼1210)에 이어 수선사(현 송광사)의 제2대 법주가 된 진
각국사 혜심(1178∼1234)은 스승의 선사상을 계승하여 고려의 선풍을 크게 진
작시켰다. 뿐만 아니라 혜심은 중국 선사들의 공안과 그에 따른 염송을 모
은 『선문염송』·『선문강요』 등을 편찬하여 고려 선불교의 이론적 기초를 닦
았으며, 또한 문학성이 높은 『무의자시집』을 남김으로써 한국 선시의 발흥
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간화일문看話一門이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임을 천
명한 혜심은, 마음은 본래 형체가 없어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이므로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할 필요가 없음을 설파하고, 그것의 묘의를 시적 형상화하여
감동을 준다. 선사의 마음의 묘용에 대한 촌철살인의 일갈은 어느 화주의 부
탁으로 벽에 쓴 「도벽화주청塗壁化主請」에서 선명히 표출되고 있다.
마음과 짝하지 말라
마음 없으면 마음은 절로 편안하리라
만일 마음과 짝하면
까딱하면 곧 마음에 속으리라.
막여심위반莫與心爲伴 무심심자안無心心自安
약장심작반若將心作伴 동즉피심만動卽被心謾
- 「도벽화주청塗壁化主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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