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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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으로 경전의 첫 구절에 반드시 등장하는 경문입니
다. 이 말의 뜻은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설하면 그 제자
가 단지 귀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귀로 듣고서 암
기했을 뿐이지 문자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시아문’도 암송의 전통을 알려주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필자의 사족을 붙이겠습니다. 앞에서 ‘여시아문’
을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고 능동문으로 번역했습니
다. 그런데 ‘들었습니다’(śruta, 聞)는 동사원형 스루(√śru(듣
다)에 과거수동분사(ta)가 첨가된 말입니다. 그래서 ‘스루타
śruta’의 정확한 번역은 ‘들려졌다’는 수동으로 해석해야 합
니다. 그렇지만 한글은 수동문보다는 능동문을 선호하는 언
어이기 때문에, 한글을 수동문으로 번역하면 어색한 문장이
되는 경우가 많아 능동문으로 해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데 한역이나 산스크리트 문장을 능동형으로 번역하면 중대
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만약에 ‘여시아문’을 능동형으로
번역하면, 문장의 능동적인 주체가 아난다가 되어 버립니다. 어디까지나
우리[아난다]에게 가르침[진리]을 설하신 분은 부처님입니다. 따라서 여시아
문의 주체는 아난다가 아니라 부처님입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 우리[아
난다]에게 진리를 설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아난다]는 단지 수동적으로 부처
님의 가르침[진리]을 들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한글 문장으로는
어색하지만, ‘여시아문’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이) 나에게 이와 같이 들
렸습니다.”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도 이런 암송의 전통은 불교 내부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지금
도 티베트나 스리랑카에서는 경전이나 중요한 논서를 전부 암송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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