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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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본질은 공하다. 연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연기법을 실체화하고, 그렇
게 실체화된 인식은 상견常見이라는 독단이 된다. 그래서 연기가 있다는 진
술을 부정함으로서 고착화된 인식의 틀을 부셔버린다. 여기서 질문자는 자
신이 가진 인식의 범주를 넘어 보다 심원한 깊이로 파고들게 된다.
둘째, ‘연기란 없는 것인가[무無]?’라는 질문에도 역시 아니라고 부정한
다. 연기가 있냐는 첫 질문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자연히 ‘연기는
없는 것이냐?’고 묻게 된다. 만약 이를 긍정하면 질문자는 ‘연기는 없다’는
단견斷見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차정은 그것도 부정한다. 실제로 연기는
눈앞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아득한 과거부터 연기는 존재
해 왔음[무시득유無始得有]’으로 연기는 없는 것[무無]이 아니다.
셋째, ‘연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역유역무亦有亦無]?’라는 질문에 대
한 부정이다. ‘연기가 있는 것이냐’는 첫 번째 질문에는 본래 공함으로 연
기란 없다고 부정했고, ‘연기는 없는 것인가’라는 두 번째 물음에는 아득한
과거부터 연기해 왔다며 부정했다. 유有와 무無가 모두 부정되었음으로 질
문자의 인식은 유와 무를 모두 긍정하는 ‘역유역무亦有亦無’의 영역으로 확
장된다. 질문자는 있음과 없음이라는 상호모순적인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차정의 답변은 이 역시 아니라고 부정한다.
‘공과 유가 한 가지[공유일제空有一際]’이고 ‘두 모습이 없음[무이상無二相]’으로 공
이 따로 있고, 유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연기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가[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질문에 대
한 부정한다. 모든 색은 비록 실체는 없지만 눈앞에는 환유幻有로서 존재
하고 있다. 공 또한 사물의 본성이 공함으로 공은 공대로 존재한다. 따라
서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님’이라는 진술도 부정된다. 연기법은 “공과 유를
서로 빼앗으며 동시에 성립한다[공유호탈동시성空有互奪同時成]”는 것이다. 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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