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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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보면 공이므로 공은 색의 모습을 빼앗고, 공의 본질을 보면 환유로
           있음으로 색은 공의 모습을 빼앗는다. 여기서 비유비무도 부정된다.
             이처럼 차정은 ‘연기법이 있는 것인가’, ‘연기법이 없는 것인가’, ‘연기법

           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인가’, ‘연기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인가’라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모두 부정한다. 차정의 답변은 유,
           무, 역유역무, 비유비무라는 사구四句 논리의 부정을 통해 고착화된 개념
           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다. 차정은 사구에 담긴 개념들을 하나씩 부정함

           으로써 질문자로 하여금 자기인식의 한계를 돌파하게 한다. 보통 사람들

           은 있다거나 없다는 단정적 입장에 빠져 확정편향을 갖고 생각하고 말한
           다. 그 결과 자신의 인식에 갇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된 인
           식을 진리라고 고집한다. 차정은 사구부정을 통해 개념에 갇힌 인식을 해

           방시키는 대화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표덕表德 - 덕을 드러내다



             차정이 끊임없이 부정을 통해 인식의 고착화를 깨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라면 표덕은 이와 반대로 긍정을 통해 화자의 진술이 담
           고 있는 의미를 심화시켜가는 방식이다. 표덕은 상대의 진술을 부정하는
           대신 그의 진술이 가진 덕성德性, 화자의 진술이 담고 있는 언어적 기표 너

           머의 기의를 드러나게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도 질문은 유, 무, 역유역무,

           비유비무라는 사구의 형태로 진행된다.
             첫째, ‘연기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긍정한다. 물론 연기
           가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씨앗이 돋

           아나는 이 모든 현상은 연기적 관계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나무와 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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