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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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학적 연구는 다양한 의식작용을
            분별하여 서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의식의 자기반영(자기의식, 자증분)은 자동적으로,

            곧 비의지적으로 성립하는 것이므로, 의지적 행위로서의 현상학적 연구가

            의식의 자기반영에 근접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
            장이다. 게다가 현상학적 연구는 다양한 의식작용들을 서술하기 위한 분
            별적 반성이고, 이런 분별적 반성은 무분별적인 자기반영과는 다른 것이

            다. 조지는 “반영성reflexivity을 갖고서, 의식은 지향성에 독립적으로 그 자

            신을 안다”고 말하여, 자기의식이 지향적 의식이 아닌 듯이 말하지만, 이
            는 현상학자인 이조 케른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잘못된 것이다. 이조 케른
            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현장은 자증분(자기의식)을 특징짓기 위해 ‘지향적으로 자기 자신
                을 붙잡음’(holding intentionally itself, 자연自縁), ‘지향적 반성’(intent

                ional reflection, 반연返縁) 같은 더 나아간 표현들을 사용한다. [하지
                만] 내가 지적하였듯이, 자기의식 속에서의 이러한 지향성은 어떤

                대상에 관한 의식이 아니고, 어떤 대상화하는 작용이 아니다.”                  4)


              여기서 이조 케른은 자증분이 대상화하는 작용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향

            적 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자증분을 “지향적 반성”이라고







            4)  Iso, Kern, “The Structure of Consciousness According to Xuanzang”, Journal of the British

             Society for Phenomenology, 19: 3, 1988,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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