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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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이야기 9



                       자증분, 기억과 역사의 근원



                                                 정은해 |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은 사람들에게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근

           심도 있고 희망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근심도 기억에서 비롯되고 희망
           도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근심이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렵

           지 않게 이해된다. 그런데 어째서 희망도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말인가?
           희망이란 삶의 변화에 대한 바람이고, 이것은 개인의 삶이나 사회의 과

           정에서 새로운 역사가 이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람이나 희망은 일
           종의 기대인데, 기대는 기억이 미래에 투사됨에 의해 성립한다. 이 점

           을 후설E.Husserl은 “기대직관Erwartungsanschaung은 거꾸로 된 기억직관
                                           1)
           umgestülpte Erinnerungsanschaung이다” 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리 보면, 기
           억이 근심과 희망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불교적
           으로 말하면, 기억이 번뇌와 열반을, 더 나아가 불국토의 수립을 가능하

           게 한다.
             기억과 역사의 관계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다. 집단의 기억이

           집단의 역사라는 말도 많이 회자되었다. 니체F.Nietzsche는 『삶에 대한 역
           사의 장점과 단점』이라는 글에서 역사 서술의 방식으로 호고적인 역사 서






           1) 에드문트 후설, 『시간의식』, 이종훈 역, 한길사, 1998,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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