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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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텅 빈’ 선미는 선사가 자연과 더불어 선정에 잠길 때 한결 잘 드
러난다. 청정한 자연이 그대로 청빈한 도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의
‘거문고’는 줄이 없는 거문고인 심금心琴, 즉 마음을 상징한다. 줄이 없어
도 마음속으로는 울린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다. 무한의 소리를 느끼고 감
동하려면 분별과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줄 없는 거문고는 궁극의
소리에 이르는 법구인 것이다. 이처럼 선의 세계는 언어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한편,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인
자성을 상징한다.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본체를 인식한 긴 노래는
깨달음의 노래이다. 푸른 물은 휴정의 눈 밝은 모습이고, 맑고 빈 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대’와 ‘나’는 바로 휴정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이미지
로 물아일체의 깨달음의 경지이다. 텅 비고 집착이 없는 선의 마음으로
세계를 보면 어디에나 부처의 이치가 있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깨달
음, 즉 ‘보리菩提’이다. 이것이 바로 ‘촉목보리’이고 ‘일체현성’이다. 여기에
선적 사유를 통해 화엄법계를 조응하는 휴정의 시적 미학의 생명력이 있
다 할 것이다.
백원기 문학평론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전 국제포교사회 회장, 전 한국동
서비교문학회 부회장. 저서로 『선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불교 설화와 마음치유』, 『숲 명상시의 이
해와 마음치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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