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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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을 누르고 한 첫 마디가, ‘너희 둘 다 나오너라, 나랑 같이 갈 데 있
다.’ 하시곤 다짜고짜 집에서 가까운 봉은사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108
배를 함께 하고는 내가 선물한 책 『내 인생을 바꾼 108배』를 쥐어주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단다. 1월 정진회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며느리가 차례로 그 책을 읽고 매일 새벽예불에 나가 108배를
한다는 군요. 절을 하고 아들은 바로 출근을 하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
와 애들 챙겨주고 일을 본다고 해요.” 그 말씀을 듣고 생각했다. 수행의
힘이 아니고는 그 새벽에 자식의 집에 달려가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절로
데리고 갈 수 없었을 거라고.
나의 선배도반이신 금륜행 보살님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것에라도 갇
히지 말자고 다짐한다. 무유정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삶에 정해진 것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진심을 다해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
도 손주를 어떻게 돌봐줄지를 미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답은 애초에
없는 거니까. 며칠 전 시내에 나가다 보니 길가의 산수유가 어느새 노랗
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맞다, 산수유가 한창 피어날 때지!” 속으로 중얼
거리며 생각했다. ‘그랬구나, 내가 말로만 그랬지 애들에 묶여 있었구나.’
괜찮다 하면서도 몇 달 동안 딸애와 함께 취업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자식과의 문제는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이
쯤에서 다시 외쳐본다. “오직 모를 뿐! 정진할 뿐!” 정진하는 삶을 선택해
서 얼마나 다행인가.
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
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
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
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
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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