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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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로서 모범이 되어온 분이다. 십 년을 뵈어왔지만 수행 면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균형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뵈면
           한 달 혹은 3개월 선방에서 정진하다 나와 계신가 하면, 어느 날은 약속

           장소에 갓난쟁이 손주를 업고 나타나신다. 외국에 사는 막내딸네 집에 가
           서 손주를 봐주고 계시다가 서울에 나타나셨다 싶으면 도시 한복판 선방

           에 출퇴근을 하며 정진하고 계신다. 고령의 시어머니를 오래 모시면서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정월 보름같이 특별한 날엔 맛있는 나물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그리웠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푸짐히 대접하기도 한다.



             “… 말로만 그랬지 애들에 묶여 있었구나!”



             시골에 시부모님이 살던 집을 조금 개조해 일 년에 여러 달을 그곳에
           머물면서 뒷산에서 밤을 주워 도반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김장철이면

           아들 딸 며느리들을 죄다 불러 김장을 한다. 물론 간장 고추장 된장도 손
           수 담그신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는 뒷산에서 주운 도토리로

           묵을 쑤어서 공양을 올리신다. 그 보들보들한 묵을 양념장에 찍어먹을 때
           마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곤 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우리 정진 모임에도 별 일 없으면 참석하셔서 허리
           를 곧추 세우고 앉아 정진하신다. 밤새 꼿꼿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허리를 펴고 앉아있는 모습만으로도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증명하고
           계신 분이다.

             얼마 전엔 큰아드님 댁 얘기를 들려주셨다. 고3 수험생을 두고 있는
           큰아들며느리가 손자에게 집착을 하고 마음을 끓이는 것 같기에, 어느 날

           새벽에 강북의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강남에 사는 아들집으로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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