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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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으려 한 노력은 높이 살 만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구질구질한 느낌마
저 거두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번쇄함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나게 하는 구
원의 한 문장이 바로 “불휘 기픈 남…”으로 시작하는 제2장의 첫 문장
입니다. 이 문장이 없었더라면 『용비어천가』는 오늘날까지 빛을 보는 장
수를 누리지 못 했을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
느니.”
똑같이 순우리말인데도 옛 문장과 현대어로 바꾼 문장의 차이가 확연
합니다. 숫제 다른 문장으로 봐야 합니다. 본래의 문장이 지닌 시詩로서
의 완결성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시는 형식과 내용, 표현과 의미, 시니
피앙과 시니피에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
니, 거부합니다. 문자 또는 음성 그 자체로 자재합니다. 제가 글의 시작
에서 결례를 무릅쓰고 고문 그대로 옮긴 이유입니다. 그래도 ‘뿌리 깊은
나무’는 표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옛 문장과 포개집니다. ‘나무’의
살림살이에 예와 이제의 다름이 없는 까닭이겠지요.
뿌리 깊은 나무. 울림 참 좋은 말입니다. 지금은 전설이 된 한 잡지의
제호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1976년에 창간, 1980년에 제5공화국을 연 신
군부에 의해 폐간되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 발행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치는 잡지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였었
지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뿌리 깊은 나무’는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우리
에게 친근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비유적 의미일 것입니
다. 그 본의는 큰 바람에도 줄기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생존을 위협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겠지요. 이런 나무라면 가지 또한 무성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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