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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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구마라집에게 학습하였으며, 남지로 건너가 삼론과 『성실론』을
전파하였다. 의희 12년(416) 요흥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요홍姚泓(재위
416~417)이 즉위한 무렵 흉노의 침략이 발생하여, 이를 물리치려고 의희
13년(417) 장안을 점령한 동진의 대장군 유유에게 후진이 멸망하였다. 이
후 송宋을 건국한 유유가 승도에게 어린 아들 의진義眞의 안위를 부탁하
고 건강으로 돌아간 사이 흉노족이 침략하여 살상을 자행하자, 승도는 장
안에 남겨진 유유의 아들 의진을 보호하여 수백 명의 제자들과 함께 남
지로 건너갔다. 이 일로 감격한 고조가 나중에 수춘壽春에 동산사東山寺를
건립하여, 항상 경론을 강론하여 천 여명이 수업하고, 전란을 피해 온 사
문 수백 명에게 의복과 음식을 공급하였다. 승도는 건강의 중흥사中興寺,
이후에는 와관사瓦官寺에서 강연하다가, 수춘으로 돌아와 96세로 입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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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남지에서 활약한 승도는 『이제론二諦論』 『성실론의소成實論義疏』를 지었
다. 전자는 삼론학 분야의 저술이고, 후자는 최초의 성실론 주석서이다.
이렇게 송 무제의 아들 의진을 전란에서 보호하여 지켜낸 공적을 통하여,
승도를 남지에 구마라집의 삼론과 성실론을 이식한 최대의 공로자로 간
주하는 학자도 있다. 승도의 제자에 담제曇濟 승종僧鐘 도량道亮 등이 있었
다. 담제曇濟는 『육가칠종론六家七宗論』을 지어 격의불교의 학설을 6~7종
으로 구별하였다.
다보사多寶寺의 도량道亮은 『성실론의소成實論義疏』를 지었다. 도량의 제
자에 지림智林이 있어 『이제론二諦論』, 『비담잡심기毘曇雜心記』, 『주십이문론
11) 『고승전』 제7권, 「석승도」.(T50-p371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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