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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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담영曇影 (4세기 전반~5세기 초반)
① 출신 지역은 자세하지 않다. 성품이 단정하여 세인과 과하게 교유
하지 않았고, 가난하여도 학업에 뜻을 두었다. 『정법화경』과 『광찬반야
경』을 강연하여, 매번 법륜을 한번 돌릴 적마다 도속道俗 1천명이 모였다
고 한다. 나중에 장안에 들어가자 요흥이 크게 예로 맞이하였고, 구마라
집이 도착하자 왕의 조칙으로 번역 사업을 보조하였다. 그 때 구마라집은
요흥에게 말하기를, 어제 담영공을 보았는데, 역시 이 나라의 풍류風流에
대한 기대를 드러낼만한 승려라고 감탄하였다. 나중에 산중에 은거하여
티끌세상으로부터 절의를 지키며, 진의 의희 중(405~418) 70세에 입적하
였다.
② 처음 『성실론成實論』이 역출되자 문답 쟁론이 오고가며 지리 해지자,
담영이 다섯 차례나 결판하고 구마라집에게 드러내보이자, 구마라집이
자신의 뜻을 깊이 얻었다고 칭찬하였다. 나중에 『묘법연화경』을 역출하였
는데 담영이 예전에 전공한 바라, 특별히 깊이 생각하여 『법화의소法華義
疏』 4권을 저술하였다. 또한 『중론』의 주석서를 저술하였다. 4)
③ 이상의 『고승전』에 기록에 의하면 담영은 구마라집 문하 중에 『중
론』의 주석서를 지은 것이다. 담영의 『중론』 주석서는 현존하지 않지만,
담영의 학설이 길장의 저서 여러 곳에 단편적으로 인용되고 있어, 후대
삼론학의 교의 수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 후대 일본에서 저
5)
술된 주석서에도 담영의 학설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담영은
4) 『고승전』 제6권, 「석담영」.(T50-p364a)
5) 일본 남도南都 삼론종의 안징(安澄, 763~814)이 저술한 『중관론소기中觀論疏記』 (日本大藏經·三論章疏)에도 담
영의 학설이 단편적으로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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