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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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론소中論疏』 2권을 저술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실정에 의거하여, 구마라집 문하 중에 최초의 『중론』 연구자로
서 담영의 업적이 불교의 사가史家에 의하여 정당한 평가를 얻지 못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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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일부 학자의 견해 는 타당하다고 본다. 여기서 구마라집 문하의 사
성 팔준 등의 생애와 저술 업적을 망라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중
에, 『중론』의 주석서를 지은 것은 오직 담영 뿐이다.
11) 혜예慧叡 (4세기 중반~5세기 중반)
① 승예僧叡와 혜예는 둘 다 구마라집의 제자로서, 북지 장안의 승예와
남지 건강의 혜예는 『고승전』에 다른 인물로 기록돠어 있다. 그러나 그 둘
이 동일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논의가 발생하였다. 그 둘의 전기를 요
약하면 다음과 같다.
승예는 위군魏郡 장락長樂 출신으로, 18세에 승현僧賢의 제지기 되엇으
며, (불도징佛圖澄의 제자) 태산太山의 승랑僧朗에게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을
청강하고, 24세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곳곳에서 강설하였다. 구마
라짐이 장안에 오자 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중론』 『십이문론』 『대지도론』
『좌선삼매경』 등의 서문을 지었다. 평소 안양安養(극락정토)에 태어나길 서
원하여, 임종시 자리에 앉아 서방을 향하여 합장하며 67세로 입적하였는
데, 승예가 입적한 방에서 오색의 향연香煙이 나는 것을 사찰 사람들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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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보았다고 한다.
6) 平井俊榮, 『중국반야사상사연구中國般若思想史硏究』, 東京:春秋社, 1976, p.105.
7) 『고승전』 제6권, 「석승예」.(T50-p364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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