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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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숨은 물거품 같고 인생명약수포공人生命若水泡空
팔십 평생 봄날 꿈속 같았네 팔십여년춘몽중八十餘年春夢中
임종 맞아 가죽자루 놓으니 임종여금방피대臨終如今放皮帒
붉은 해가 서산을 넘는구나. 일륜홍일하서봉一輪紅日下西峰
- 「임종게臨終偈」
태고 최후의 ‘맑고 텅 빔’의 선적 미학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태고
는 양산사(희양산 봉암사)에 머물며 중창불사를 크게 이룩한 후 가지산, 속
리산 등으로 옮겨 수행을 하다 1382년 여름 다시 소설산으로 돌아와 잠
시 머물다 법랍 69세, 세수 82세를 일기로 위의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
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치열한 수행과 거기에서 얻은 깨달음, 그 모든 것
들을 하나의 ‘유의법有爲法’으로 본다면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아서 실
체가 없는 꿈속의 일에 불과하다. 불교에서는 사라질 몸뚱이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여 흔히 육신을 피고름이 가득한 가죽 주머니에 비유한다. 육
신과의 이별을 두고 태고는 자신의 죽음을 지는 해를 보는 것처럼 거리두
기를 하며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일체에 걸림이 없는 생사를 벗어난
청정 자성의 적멸의 세계에 들어가는 선사의 탕탕 무애한 선적 사유가 번
쩍인다. 이처럼 공과 색 또는 허와 실이라는 이항대립의 통합이 바로 선
이 지향하는 깨침의 미학이다. 하여 세간만법 모두를 차별상 없이 그려내
는 태고의 원융회통 깨달음의 법열이 시공을 초월하여 맑은 바람으로 태
고에 불어오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백원기 문학평론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전 국제포교사회 회장, 전 한국동
서비교문학회 부회장. 저서로 『선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불교 설화와 마음치유』, 『숲 명상시의 이
해와 마음치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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