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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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을 가기 전까지 누구보다 가까이 지냈다.
난생 처음 절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맞은 첫 수련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거기서 처음 새벽예불을 했고, 겨울 산사의 창호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고, 고요한 절 마당을 걸었다. 그리고 처음 1080배를 했
다. 저 모든 것은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행운으로 여기는 것들이다. 수련
회가 끝나고 내장사에서 백양사로 넘어가는 산길을 말없이 걸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사박사박 마른 낙엽을 밟으며 걸었던 그 산길을 다시 한 번
걸어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다. 꼭 한 번 걸어봐야지.
“그 때 왜 우리 좌담회 할 때 누군가 지도교수한테 말대답했다고 혼났
던 거 기억하니?”
“그랬어? 나는 그건 기억이 안 나, 절을 한 뒤 깨죽 먹은 거 생각 나.”
“우리 왜 수련회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목욕탕에도 같이 갔잖아요.”
“그래 기억나. 그런데 왜 목욕탕에 갔을까?”
남녀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20여 명의 우리들은 그 후 중등 과정 야학
을 하면서 동지애를 다졌고, 함께 이기영 박사님의 불교 강의를 지속해
들으며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언젠가 책을 정리하다가 보니 금강
경 책에 적어놓은 깨알 같은 글씨들로 가득했다. 책장 사이사이로 불교의
핵심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보였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서야 ‘불교가 이
런 것이었구나’ 했는데도, 정리는 제대로 해놓은 것을 보면, 그때는 제대
로 이해를 못한 채 적어놓지만,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공부가 익
어갔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여름, 친구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결혼
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업가로 변신, 음식점을 경영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기독교가 주류를 이룬 교포사회에서도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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