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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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12
‘만작滿酌’과 ‘일심불란一心不亂’
윤제학 | 작가·자유기고가
만작滿酌. 잔 가득 술이 채워지는 모습을 그려 보이는 말입니다. 그렇
게 하여 가득 채워진 술잔을 일컫기도 하지요. 애주가라면 그 말만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릴 법합니다. 대단한 근육질을 아니어도 상당한 힘을 내
장한 말입니다. 대개 이런 말은 의미의 울타리를 사뿐히 뛰어넘습니다.
다른 용례를 보겠습니다.
활쏘기 즉 궁술에서도 ‘만작滿酌’이라는 말을 씁니다. 화살을 메긴 시
위를 최대한 당긴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최대한’이라 해서 있는 힘을
다 쓰는 건 아닙니다. 넘치지 않을 만큼, 활과 활 쏘는 사람의 몸이 이상
적으로 합일된 상태를 가리키겠지요. 비유컨대 가득 채워진 술잔을 들어
올려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자세 말입니다.
모든 기예가 그렇듯이 활쏘기에서도 자세를 무겁게 여깁니다. 활쏘기
의 세계에서는 활을 쏘는 자세를 궁체弓體라고 합니다. 독특한 어법입니
다. 글자 그대로 이해하자면 활의 몸 또는 활 그 자체를 일컬어야 할 텐
데 말이지요. 하지만 매력적입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행위의 주체를
투명하게 지워버렸으니까요. 쉬운 말이 아닙니다. 행위에서 행위자를 지
워버린다는 것은 해탈의 경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활 쏘
는 사람의 궁체가 그 경지를 보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활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몸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궁체의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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