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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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발’ 다음 해 아와에게 한 독일인이 찾아와 제자가 되었습니다. 철
학자 오르겐 헤리겔(1884~1955). 신칸트학파의 이 철학자는 왜 활쏘기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을까요. 그는 선禪의 세계에 이르는 우회로로 궁도
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신을 넘어선 신’과의 만남, ‘주관
적 초탈이 아닌 진정한 초탈’을 경험하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에 다가서
기 위해서였습니다. 헤리겔은 6년 동안 아와에게서 활쏘기를 배웠습니
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가르침’의 세계에 들어가기까지 넘어야 했던 ‘저
항감’과 ‘거부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 책을 썼습니다. 굳이 ‘저항감’과 ‘거
부감’을 밝힌 이유는 (서구의)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일종의 백신 같은
것이라고 이해해도 좋겠지요. 그것은 거의 서구화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궁도가 정신적인 수련이라면
“왜 아직도 화살과 과녁이 필요하단 말인가?”, “궁사의 자기 자신과의 대
결”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그가 쓴 책 가운데서 수련의 정점
에 이르렀을 때 스승과 나눈 대화 몇 대목만 보겠습니다. 『마음을 쏘다,
활』이라는 책입니다.(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걷는책. 원제는 『Zen in der
Kunst des Bogenschießens』, 직역하면 『활쏘기의 선禪』입니다.)
“제발 명중이라는 말을 머리에서 지워버리세요. 백발백중이
아니라도 명궁이 될 수 있습니다. 저기 있는 표적에 명중시키
는 것은 최고도의 무심, 무아지경, 자기 몰입, 또는 뭐라 이름
붙이든 간에,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외적인 검증에 불과
합니다. (…)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사람만이 비로소 외부에 있
는 저 표적도 백발백중 맞힐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저에
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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