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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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했더니 만실이라 불가능하단다. 할 수 없이 구례로 나가기로 하고

            화엄사 근처 리조트에 예약을 하고 섬진강가 벚꽃 터널을 지나 화엄사로
            갔더니, 이게 웬일인가,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던 그곳보다 훨씬 주변이

            아름다웠다. 그렇다. 지금 있는 이곳이 좋아서 떠나지 못하는 것도 집착
            인 거다. 지금 있는 이곳을 떠나면 더 아름다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에도 갇히면 발전이 없다 싶다.
              친구와 후배는 처음 와본 화엄사의 웅장하면서 기품 있는 모습에 감탄

            을 금치 못했다. 새벽에 리조트에서 나와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
            새들의 합창을  들으면서 화엄사까지 걸어가 셋이 각황전 부처님 앞에 삼

            배를 올리고 있노라니 극락이 따로 없다 싶었다. 말은 안했지만 후배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앞으로 또 올 봄날에 더 많

            이 여행하자고, 이렇게 전국의 아름다운 절들을 다니면서 함께 극락을 거
            닐자고 말하고 싶었다.

              쌍계사 근처 연암에 사시는 도현 스님께 잠깐 들렀더니 스님께서 우리
            에게 ‘백지수표’ 법문을 하셨다. 스님께선 세 평 작은 토굴에 별반 신도도

            없이 살고 있지만 부처님께서 불법이라는 백지 수표 한 장을 주셨기에 아
            무 걱정 없이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쓰되

            너무 낭비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잘 써야 한다고. 이번 친구, 후배와 함께
            한 여행에서 나는 우리 모두에게 부처님께서 백지 수표 한 장 주신 걸 다

            시 환기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써야지.


             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
             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
             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
             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
             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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